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인 오스틴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1775년 잉글랜드 햄프셔 주 스티븐슨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일곱째 딸로,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와서 지역 교구 [[사제]](vicar)를 지냈다. 어머니 커샌드라 오스틴[* 커샌드라 오스틴 역시 자신의 여러 아이들뿐만 아니라 집을 떠나 온 조지 오스틴의 학생들을 먹이고 돌보는 동시에 농작물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는 등 여러 역할을 맡았다. 커샌드라는 활발하고 재치 있는 성격 덕분에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어느날 한 학생이 돌아오지 않자 말장난과 라임에 능했던 그는 재미있는 시를 써서 오스틴 학교로 돌아오기를 권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실제로 곧 돌아와 옥스퍼드에 진학했고, 이때 받은 시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이렇듯 밝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즐거운 유년기를 보낸 학생들 중 상당수는 오스틴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형제와 같은 사이가 되었다. 커샌드라는 평생 열심히 일 했고 많은 아이를 낳은 탓에 만성적인 질환들에 시달려 다소 건강 염려증이 있었다. 그래서 때로 둘째 딸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기도 했지만 많은 손자 손녀들을 두고 장수하다가 80대에 죽었다.]의 결혼 전 성은 '리'였다. 방대하게 퍼져 나간 리 가문의 선조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의 런던 시장으로 리 가문의 많은 이들이 귀족 작위를 받았거나 귀족들과 결혼했다. 그러나 후손들까지 부유했던 것은 아니었다. 커샌드라 리의 아버지는 평범한 교구 사제였고,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물려 받아 부자가 된 오빠와는 달리 커샌드라는 작은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사제의 자녀이므로 신분상 젠틀맨 계층이지만, 형제자매가 많고 교구가 크지 않아 가정형편은 넉넉하진 못했다. 따라서 아버지는 농장일을 부업으로 해야 했고, 제인도 어릴 때부터 일을 거들었던 듯하다.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가난한 사제였지만 500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했다. 옥스퍼드를 다녔던 오빠 제임스와 헨리는 함께 문예 잡지를 창간하고 시를 쓰며 연극을 했다. 어린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의 서재를 마음대로 드나들었고, 이웃 르프로이 부인의 서재에서도 책을 빌려볼 수 있었던 덕에 문학적 지식력을 키웠다. 제인 오스틴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읽고, 쓰고, 읽히기를 원했다. 제인 오스틴이 어릴 때 쓴 이야기들은 남자 아이들이 넘쳐나는 집의 활기찬 에너지를 반영하듯이 폭력과 거친 몸 싸움, 험한 말 장난 등으로 가득해 얌전한 목사관의 소녀가 수줍게 숨겨가며 썼다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이 이야기들은 명백하게 소년 관객들을 의식하고 쓴 농담들이다. 제인은 부드러운 성격에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와 더 가까웠던 듯하다. 십대 시절 아버지 조지 오스틴이 관리했던 교회에 몰래 들어가 결혼 명부에 자신의 이름과 가상의 신랑 이름을 적어 놓거나, 가족끼리 돌려보기 위해 썼던 풍자적인 역사서에 [[가톨릭]]에 끌린다고 써 놓는 등 아버지를 겨냥한 장난을 종종 쳤다.[* 아버지는 [[성공회]] 사제다.] 이런 일화를 보면 아버지와 편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19살이 된 제인에게 생일 선물로 글 쓰기용 책상을 주고, 딸의 작품을 출판하려고 가장 먼저 시도했을 정도로 딸의 재능을 믿고 지지했다. 어머니 커샌드라와는 관계가 좀 복잡했다. 제인은 어머니의 실용적인 성격과 의지를 높게 평가했고 풍자의 재능까지 물려 받았지만, 남아있는 편지들로 봐서는 늘 쉬운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언니 커샌드라 오스틴(Cassandra Austen)와 같이 수도원 기숙학교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나머지는 다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 정도면 당대 젠트리 여성 중에서도 꽤 교육을 받은 편이었다. 또한 아버지가 엄하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독서]]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문학세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18세기 영국 상류층 여성들은 당시 유럽 분위기가 그렇듯 [[교양]]을 쌓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미술]], [[음악]] 등 많은 분야를 골고루 적당히 (교양 수준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어느 한 가지를 전문적으로 파는 것은 오히려 품위 없다고 여겼다. 제인은 11세 무렵부터 [[소설]]을 습작했는데, 자기가 쓴 글을 저녁식사 후에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평가받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스무 살이 되기까지 희곡, 시, 단편소설, 에세이 등 여러 장르 글을 쓰며 습작기를 보냈다. 언니 커샌드라 오스틴(Cassandra Austen)과는 어릴 적부터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평생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젊을 때는 연애사업에도 꽤나 몰두했다고 한다. 오빠인 헨리가 '''"제인은 춤에 미쳤어요!"'''라고 쓴 기록이 있을 정도. 언니 커샌드라가 제인 오스틴의 가장 친한 친구로, 지금 남아있는 가장 유명한 초상도 커샌드라가 그린 것이다. 또 여느 소녀들처럼 평범했던 그녀에게 내재되었던 문학적 감수성이 일깨워진 데는 시와 연극을 좋아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